무소유의 가르침에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법정스님은
종교를 떠나서 많은사람의 존경을
받았던 우리사회의 큰 스승이었고
깨달음을 얻은 큰스님에게 육신이
태어난 고향이 무슨의미 있겠는가
큰마음 깨달은 스님이 태어났어도
태어난 것이없고 죽었어도 죽은것
없다고 하며 태어났다것은 소립자
인간이 발견한 가장작은 원소들이
어떤인연에 의해 잠시만나 형상을
이루고있는 것이며 죽는다는 것은
소립자로 구성된 4대 육신 만났던
인연이 다해 흡어지는 것이라하며
따라서 이런분들에게 고향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는 고향이있고 인간
(朴在喆 법정스님의 속세본명)은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에 1932년
10월8일 태어나서는 2010년3월
11일날 길상사에 입적을 하셨다
필자가 순천 송광사로 등산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그분이 약 17년 간
머물면서 수행을 했다는곳 불일암
(佛日菴)을 들렸고 불일암입구에
있는 법정스님 약력에도 1932년
해남출생 이라며 적혀있고 불일암
올라가는 길은 큰경사가 있었지만
그분의 발자취를 밟고싶어서 기쁜 마음으로 무소유길을 따라 올라가
불일암에 도착해 유명한 나무의자
앉아보고 스님이 생활했던 자취를
둘러보는 소년 박재철은 문내면에
우수영 국민 (초등) 학교를 다녔고
날마다 우수영 울돌목길을 보면서
무슨생각을 하며 자랐을까 이곳은
정유재란때 이순신장군이 13척의
배로133척 일본 군함선 대파하고
일본수군 수만명이 죽은 곳이라며
스무살의 청년 시절에는 동족끼리
싸워서 백만명이죽은 6.25전쟁을
지켜보며 인간의 생사에 관해그는
어떤생각 했나 전남대학교 철학과
4학년 학생인 박재철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사란 무엇인가 그리고
나란존재는 무엇인가 해답을 찾기
위해서 고향집 떠났고 고향땅있는
대흥사로 같까도 생각을 하였지만
태어난곳 아주멀리 떨어진 곳으로
고향을 떠났는데 어려운시절 대학
까지 보내준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마음 한없이 무거웠지만 큰결심을
포기할수 없었다고 하며 떠나기전
부모님이 지어준 재철이란 이름을
마지막 불리보니 눈시울 붉어지고
울컥울움이 치솟았다 하며 그러나
그리움과 과거를 잊고서 오직모든
번뇌와 망상을 끊고서 자유인되기
위해 출가를했고 최근 해남군에서
법정스님의 생가 자리에 '법정스님
마을 도서관 개관하고 스님유품과
사진을 전시하고 포토존과 조망대
설치하며 원래 생가를 복원하렸고
했지만 내것이라고 하는것은 어떤
것도 남기지말고 사리도 찾지말고
탑과비석도 세우치 말라는 스님의
유지가있어 참작해 마을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하며 이것마저도 허락
하실까 망설임없지 않았고 아무튼
해남군의 선택으로 고향의 역활에
어느정도 했다고 생각하며 스님은
누구보다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며
가신분 이며 무소유란것 아무것도
갖지말라는 뜻이아니고 꼭 필요한
만큼만 가지라는 뜻이며 무소유가
잘못 해석돼 아무것도 소유하지를
말라는 뜻으로도 오해를 받을까바
염려하시고 말년에 법문을 하실때
무소유가 가난을 찬양하고 권고한
것아니고 우리모두 부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부자가 투기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거나 응분에
넘치는 재물을 탑한다거나 물질을
집착하는 것보다는 가난이 더욱더
고귀한것 이라며 고정관념 집착을
않도록 당부한 불교용어를 하셨고
인간은 빈손왔다가 주머니가 없은
옷을입고 빈손으로 가는데 무엇에
탐욕하는가 재물은 무소유라 뜻을
실천한 서울성북구 대원각 요정은
법정스님 무소유에 감명을 받아서
사랑과 로맨스가 깃던 고급요정인
대원각은 그당시 2천억대 전재산
길상사의 사찰를 기부한 요정마담
영정과 법정스님 영정이 모셔진곳
전설적인 비화에 기대를 바랍니다.























